최근 개봉한 ‘서울의 봄’ 영화가 굉장히 핫 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종류의 영화라 저도 영화관으로 바로 달려가 보고 왔습니다.
역사,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싫어할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거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는 영화로만 보여질 수도 있을 겁니다.
서울의 봄을 보기 전에 조금의 역사적 지식이 있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작성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주된 내용이 되었던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12. 12 사태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였습니다.
이때 계엄법상 당시 보안 사령관인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합동수사본부장이된 전두환은 자신을 주축으로 하는 군인 내부 사조직 ‘하나회’에 포함된 군인들에게 중요 보직을 주고 싶었으나 육군 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정승화는 점점 세력을 확장하는 전두환을 좋게 보지 않았고 전두환을 다른 보직으로 임명하려 하였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전두환은 정승화를 제거 하고 자신이 원하는 보직을 하고 자신의 사람들을 주요 보직 자리에 두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게 바로 12. 12 사태입니다.
전두환은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9 사단장 노태우, 1 군단장 황영시, 수도 군단장 차규헌, 국방부 군수 차관보 유학성 등과 함께 정변을 모의 한 후 12월 12일로 실행 날짜를 결정하였습니다.
이 계획에 따라 1979년 12월 12일 저녁 허삼수· 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 경비 사령부 33 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에 있는 육군 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였습니다.
그 후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를 납치 하였습니다.
납치된 육군 참모 총장 정승화는 보안사 내에 있는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되었습니다.
한편, 정승화의 연행 계획에 반대할지도 모르는 수경 사령관 장태완, 특전 사령관 정병주, 육군 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 실장 허화평에게 유인 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 되었습니다.
연회 도중 정승화의 연행 사실이 정병주, 장태완, 김진기 등에게 전해졌습니다.
정병주, 김진기, 장태완 육군 장군들은 즉각적으로 대응 태세를 갖추려 하였으나, 이미 전두환이 장기오와 박희도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 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 지휘부를 무력화 시킨 후였습니다.
정승화의 연행 소식이 알려지자 정병주와 장태완은 수도권 인근의 병력을 동원하여 신군부의 군사 반란에 대응하려 하였지만, 신군부는 전방을 지키던 노태우의 9사단을 끌어들이며 대처하였습니다.
결국 신군부는 정병주와 장태완을 체포하는 데 성공하며 반란 진압군은 무력화되었습니다.
신군부 – 박정희 시대 군인과 구분하기 위해 생겨난 말
이와 같은 일련의 전두환의 12/ 12 사태 진전은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는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 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국방 장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거절 당하였습니다.
이에 신군부는 국방장관 노재현(盧載鉉)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 하게 설득하였습니다.
결국 최규하는 1979년 12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 하였습니다.
군사 반란이 성공하자 신군부는 빠르게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전두환은 대장, 중앙 정보 부장을 거쳐 대한민국 11대, 12대 대통령에 이르렀고, 노태우 역시 대장, 내무부 장관을 거쳐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이외에도 군사 반란에 가담한 신군부 인원들은 대한민국의 중요 요직을 차지하였습니다.
또한 12·12 군사 반란의 성공으로 신군부는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여 민주 헌정을 중지시키고 군정으로 회귀 하려고도 하였습니다.
이에 많은 국민과 정치인이 저항 운동을 펼쳤고, 1980년 5월 17일 비상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는 5·18 민주화 운동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의 주도자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 군사 반란은 집권 세력에 의하여 정당화되었습니다.
그 후 대한민국 14대 대통령 김영삼의 문민 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리고 1995년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 군사 반란 가담, 뇌물 수수 등으로 기소되어 1997년 징역형과 추징금을 선고 받았으나 같은 해에 사면 되었습니다.
서울의 봄 영화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 픽션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실제 상황이 저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연기를 아주 잘했습니다.
지난 역사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무고한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가면 절대 안되는 일입니다.
12. 12 사태 5.18 민주화 운동 등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후 가진 대통령의 자리..
사과를 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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